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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대백과] 야구의 결정적 장면 "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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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1 04:44:20

역전

호남의 야구열기에 불을 지른 군산상고의 역전승

 

1972년 군산상고는 부산고와의 공방 끝에 극적인 역전승으로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 우승했다. [동아일보] 1972.07.20. 1면.

1972년 7월 19일 제 26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전통의 강호 부산고는 창단 3년차의 신생팀 군산상고를 4대 1로 여유 있게 압도한 채 9회 말 마지막 수비에 들어갔다. 첫 타자 김우근이 안타를 치고 나갔지만 다음 타자를 뜬공으로 아웃 처리. 이제 우승까지 단 두 개의 아웃카운트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경기를 끝내면 대회 최우수선수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았던 부산고의 선발투수 편기철은 갑자기 긴장이 풀렸는지 연속 볼넷을 허용하며 만루를 만들어주었고, 이어 1번 타자 김일권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져 밀어내기로 한 점을 내주고 만다. 군산상고 응원단석은 이미 3점을 내준 8회 초에 승부가 기울었음을 직감한 사람들이 빠져 나가 휑해 있었지만, 원래 약자에 동정적이기 마련인 데다, 잘하면 진풍경을 하나 구경하겠다 싶은 마음으로 군산상고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서울사람들이 외치는 군산상고 응원구호는 점점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상대 팀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져가는 것을 느끼며 한층 더 굳어버린 부산고 투수는 2번 양기탁에게 동점타를 허용했고, 3번 김준환에게 끝내기 결승타를 맞고 무너져버리고 만다. 그날로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으며 고교야구무대의 신흥강호로 떠올랐고, 그로부터 호남의 야구열기가 시작되었으며, 지역연고제를 근간으로 하는 한국 프로야구의 구상이 가능케 했다.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역전승의 감격

 

10년 뒤인 1982년 9월 14일, 잠실에서 열린 세계야구 선수권대회 최종전에서 만난 것은 한국과 일본이었다. 토너먼트가 아닌 풀리그 방식이긴 했지만 두 나라가 각기 7승 1패의 가장 좋은 전적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경기가 그대로 결승전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국팀은 2회초 수비 때 좌익수 유두열이 단타로 막을 수 있는 공을 뒤로 빠뜨려 3루타를 만들어주는 실책 탓에 2점을 먼저 내준 반면, 타선은 일본 선발 스즈키의 구위에 눌려 내야안타 한 개 밖에 뽑아내지 못한 채 8회까지 끌려가야 했다.

1982년 세계야구 선수권대회 우승에 방점을 찍은 5번 한대화의 통렬한 석점 홈런 장면. [경향신문] 1982.09.15. 9면.

하지만 8회말, 선두타자 8번 심재원의 안타에 이어 9번 대타 김정수의 2루타로 1점 만회, 그리고 1번 조성옥의 보내기 번트 성공에 이어 코치의 사인을 잘못 본 2번 김재박의 '개구리 점프번트'가 3루쪽 라인을 기가 막히게 타고 흐르는 내야안타가 되면서 동점. 그리고 3번 이해창의 계속된 안타와 4번 장효조의 땅볼로 2아웃 1, 2루 상황에서 터져나온 5번 한대화의 통렬한 석점 홈런. 끝내 한국은 일본을 5대 2로 무너뜨리고 당대 최고 권위의 세계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아시아권 국가로서는 첫 번째 우승을 달성했으며, 그 감격과 열기는 그 해 출범했던 프로야구의 인기로 그대로 옮겨붙을 수 있었다.

2003년 5월 27일 현대 유니콘스는 심정수의 끝내기 3점 홈런을 끝으로, 역대 최다점수차 역전승 기록을 세운다. <출처: 연합뉴스>

2003년, 5월 27일. 현대 유니콘스는 기아 타이거즈와의 수원 홈경기에 당시 14연승을 달리고 있던 에이스 정민태를 내세웠다. 하지만 그는 무려 6점을 빼앗기며 1회를 채 마무리하지도 못한 채 밀려나고 말았고, 채 몸도 풀지 못하고 마운드를 이어받은 구원투수들도 연달아 뭇매를 맞기 시작했다. 2회 초가 끝났을 때 점수는 10대 1. 하지만 현대는 2회 말에 김동수의 3점 홈런이 터져나온 데 이어 3회에는 이숭용의 2점 홈런, 4회에는 다시 김동수의 연타석 솔로홈런으로 차곡차곡 따라가 7점을 만들었고, 3점 차로 뒤진 채 맞이한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는 박종호, 프랭클린의 연속안타로 두 점을 따라간 뒤 심정수의 끝내기 3점 홈런으로 기어이 경기를 뒤집어 12대 10을 만들어놓고 말았다. 9점차를 뒤집어낸, 역대 최다점수차 역전승 기록이다.

09년 LG-SK전, 끝장승부의 숙연함

 

2009년 5월 12일 잠실에서는 전년도 꼴찌팀 LG 트윈스가 3연속 우승을 노리던 SK 와이번스와 맞섰지만 1대 9로 몰린 채 9회말에 들어서고 있었다. ‘야구의 신’이라 불리던 SK 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은 늘 마지막 순간까지도 서너 점 정도의 리드는 리드로 생각하지 않는 냉철한 경기운영으로 상대팀 팬들의 원성을 사곤 하던 인물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미 결정된 승부라고 생각했던지 잘 던지던 특급마무리 정대현을 아끼기 위해 부상에서 회복중이던 정우람을 교체해 올렸다. 하지만 LG 타선은 선두타자 김정민의 안타를 신호탄으로 14명의 타자가 등장해 8개의 안타와 3개의 볼넷이 이어갔고, 결국 점수는 9대 9 동점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연장 12회까지의 혈투.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연장승부를 감당하느라 선수가 동이 난 LG 트윈스는 평생 포수만 했던 김정민을 좌익수 위치에 세우고 지명타자요원 최동수를 마운드에 세우는 고육지책을 쓸 수밖에 없었을 정도였다.

LG는 세 번이나 끝내기 찬스를 잡았지만 모두 실패했고, 결국 승부는 연장 12회초에 재차 폭발한 SK가 16대 10으로 가져가는 것으로 맺어졌다. 그리고 그날의 혈투를 분수령으로 LG는 상위권에서 이탈해 다시 하위권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SK 역시 선두권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최강의 면모를 잃고 3강중의 하나로 내려서기 시작했다. 매주 여섯 번씩, 한 해 동안 133번이나 경기를 치르는 정규리그에서 젖 먹던 힘까지 짜내야 하는 한 경기의 여파는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었다.

2009년 5월 12일 프로야구 SK-LG 경기에서 10회말까지 양팀이 10대 10 동점을 이뤄나가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하지만 그날의 경기가 우리 모두에게 무의미한 헛고생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아마도 그날의 경기를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평생 9대 1로 몰린 채 맞은 9회 말 같은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마다 LG를 떠올릴 것이다. 또 기록적인 대역전패의 웃음거리가 되기 직전의 곤혹스러운 순간마다 SK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물론, 2000년대 후반 갑작스런 돌풍 속에서 600만 가까운 관중을 동원하기 시작한 프로야구의 열기 속에 그런 진땀 내 나는 끝장승부의 숙연함이 한 몫 한 것 역시 지나쳐서는 안 된다.

역전, 야구의 본질적 특징

 

야구는 정해진 시간 안에서 승부를 가리는 경기가 아니다. 9회까지, 스물일곱 번의 기회를 모두 날리기 전까지는 절대 지지 않는 것이 야구이며, 단 한 방의 홈런으로 4점 차이까지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야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전은 야구의 본질적 특징이며, 야구를 야구답게 하고 인생을 은유하며 끈기와 용기, 희망을 전하는 결정적 장면이 되었다.

김은식
정치학과 사회학을 전공했고,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관한 글을 써왔다. 2006년부터는 각종 지면에 야구에 관한 에세이와 칼럼을 써왔다. [야구의 추억],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등 야구 관련 도서들도 여러 권 집필했다. 테드 윌리엄스가 지은 [타격의 과학]도 번역했다.
출처
김은식, [야구상식사전], 이상,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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